2000년.
2살이 많은 나의 언니는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을 갔다.
말이 유학이지, 한국에 돌아올 기약이 없는 영구이민과 같았다.
2001년 겨울,
홈스테이 생활을 마치고 Burnaby의 한 아파트에 자리를 잡게 된 언니는
엄마를 집으로 초대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된 유학생활을 위해 새 보금자리를 필요로 했던 언니에게
새 가구와 살림살이를 같이 보고 장만해주기 위해 간 것이다.
당시 건축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나는
그 해 12월
학기말 시험과 설계작업에 밤샘을 밥 먹듯이해가며 살고있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언니의 크리스마스 연휴에 맞춰서 학교일정이 끝나면 밴쿠버로 오라며
급하게 대기예약으로 한 사람의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고,
엄청난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정도는 취소가 되었기에 난 학기가 끝나자마자 밴쿠버로 향했다.
학교생활에만 온 정신이 집중되어있었기에
해외여행도, 밴쿠버도, 언니, 엄마와 함께 보낼 시간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나 기대가 없었던 나는
짐도 대충싸서 아무 생각없이 훌쩍 2주간의 여행을 떠났던것이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는 거였다.
초등학교때 가족 모두가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던걸 제외하고는
처음 해외여행이었고,
언니와 엄마를 공항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혼자하는 여행이었다.
도착하면 언니 살림살이를 이용할 생각으로
옷 몇 벌과 속옷만 제대로 챙겨갔기에
내 큰, 아주 큰 이민용 여행가방에는 온통 김장김치뿐이었다.
엄청나게 무거운 그 짐을 끌고
7cm 힐에 정장, 풀메이크업으로
여행이 참 익숙하지않은 사람티를 팍팍내며 11시간 비행을 했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 꽤나 생생해서
출국수속을 밟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하는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캐나다 입국카드도 정직하게 열심히 작성했다.
학창시절에 영어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한 학생은 아니였지만
희한하게도 듣기와 말하기는 기본적으로 했기에
입국인터뷰도 별로 긴장되지 않았고,
당당하게 묻는 말에 대답했다.
나는.
우리 언니를 만나러 2주동안 여행을 왔느라고.
그 사람은 물었다.
니가 가져온 야채는 무엇이냐고.
나는.
당당하고 크게 얘기했다.
김치.
그 사람은 한번 더 물었고,
나는 한 번 더 크게 얘기했다.
김치.
그 사람은 당황한듯 어딘가에 전화를 했고
1분여 통화를 하며
그의 입에서 김치라는 단어가 몇 번 튀어나오더니
그냥 가라고했다.
아마도 냄새때문이었겠지.
그렇게 나와서
그 놈의 김치 때문에 엄청나게 무거운 짐들을 찾아
언니를 만났다.
11시간 비행으로
내 정장바지는 무릎이 추리닝처럼 튀어나오고
7cm 힐 때문에 발가락이 부러질 것 같았다.

